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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이과 왜 서로 알아야 하냐면요” 카르노 저자 인터뷰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물리학을 전공한 후 정치외교학과 석사를 마쳤고, 내년 박사 과정을 준비하고 있어요. 본격적인 연구자 생활을 하기 전에 올해는 좀 더 해보고 싶은 일에 도전해 보자는 생각이 들어 공부 외에 과학 관련 글쓰기나 페임랩 준비 같은 활동도 병행하고 있어요.
페임랩이 뭐예요?
과학 기술 관련 전공자나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 최신 기술 등을 3분동안 발표하는 대회요. 대중들에게 낯선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자는 취지로 매년 열리고 있죠.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되려는 건 아니지만, 전공자로서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나만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사실 파이퍼에서 글을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이과에서 문과로 전과를 건데, 공부하면서 힘든 점이 있었나요?
학부 2~3학년쯤부터 했던 고민인데요, 물리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내가 배우는 과학이 현실과 조금 동떨어졌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학문적으로 다루는 너무 깊고 심오한 세상이 내가 사는 현실과 잘 연결이 안 됐거든요. 물리학적 이론을 연구해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는 게 꿈이었는데, 그 길이 잘 안 보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왜 굳이 정치외교학을 선택해 공부하게 됐나요?
처음 물리학에 끌렸던 건 이과적 시각이나 공식으로 여러 문제들을 증명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고등학생 때는 미국 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이 쓴 《엘러건트 유니버스》를 읽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거란 상상도 한 적 있고요.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새로운 문제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기후 변화나 고령화 같은 사회적 문제들요. 제가 공부하고 이해한 물리학은 세상의 모든 걸 ‘힘’으로 설명해요. 특정 힘에 도달하면, 법칙에 따라 어떤 결과가 일어나죠. 그런데 이런 새로운 문제들은 물리학으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겠더라고요. 다른 분야에서 이야기하는 ‘힘’은 무엇이 있나 찾던 중에 정치외교 분야가 눈에 띄었어요. 권력이라는 새로운 힘을 이해한다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정확히 읽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요.
자연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모두를 공부한 셈이네요. 전과를 하고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문과와 이과는 사고 방식 자체가 달라 힘들었어요. 그 전까지 저는 수식을 가지고 공부한 사람인데 역사적 내용이나 정치, 철학 용어에 익숙해지는 데만 해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글쓰기도 너무 낯설었고요. 그래서인지 다른 분들에 비해 석사 과정을 조금 길게 했네요. (웃음)
그런데도 정치외교 박사 과정까지 준비하고 있는 보면 어떤 목표 같은 게 생긴 건가요?
네. 최근 서구 선진국에서는 과학 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다시 높아지고 있고, 관련 어젠다들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어요. 지난 5월 새 정부의 첫 한미정상회담 당시 바이든 대통령의 첫 공식 일정이 평택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시작되기도 했었죠. 정치외교는 외교나 국방 전략 등을 구상하는 분야인데, 우리나라는 이러한 기술적인 부분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야 하는지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아요. 박사 과정 이후엔 그런 측면에서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결국 앞으로도 과학 분야는 손에서 놓지 못하겠네요.
정치외교에서는 전쟁사를 많이 다루는데요, 전쟁이란 건 국가 간 갈등이 어떤 수단으로도 해결이 안 될 때 주로 발생해요. 서로 말이 안 통하면 싸우는 거죠. 그런데 대부분의 전쟁에서 문제를 해결한 건 결국 힘이었어요. 특히 근대 이후 시기의 그 힘은 대부분 무기, 즉 과학기술에 따라 결정됐고요. 정치외교와 과학은 사실 떼려야 뗄 수 없죠.
“이과와 문과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어요. 흔히들 이과, 문과는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일 수 없는 존재로 치부하잖아요. 세상을 각기 다른 시선으로 반 정도만 보면서요. 적어도 전 문제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을 지녔다고 생각해요. 서로 못 보는 영역을 발견해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카르노 저자
그래서 과학 관련 글쓰기도 시작한 건가요?
석사 졸업 후에 공부하면서 논문을 준비하려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글을 구상하고 쓴다 한들, 과연 이걸 몇명이나 읽을까? 사실 논문은 전문 분야 연구자가 아니고서는 읽을 일이 잘 없으니까요. 그동안 공부하고 깨달은 것들을 내러티브 형식으로 정리해 더 많은 사람들이 쉽고 재미있게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글을 쓰면서 세운 목표나 계획 같은 있나요?
우리나라는 중고등학교에서 수학이나 과학을 너무 어렵게 가르치는 편이에요. 중요하다고는 하는데 이게 어디에 쓰이는지, 왜 중요한지는 알려주지 안죠. 그러다 보니 ‘도대체 내가 이걸 왜 배우고 있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런데 수학이나 물리학에 존재하는 수많은 개념과 이론을 우리가 다 배우는 건 아니에요. 어떤 문제를 해결한 역사가 있어 학계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학교에서 가르치죠. 인류에 ‘힘’이 된 것들요. 예를 들어 2차함수는 대포 포탄의 움직임, 즉 포물선을 효율적으로 계산하는 데 쓰였어요. 실제로 프랑스 혁명 시기엔 대포가 가장 강력한 무기였는데, 당시 이 수학 공식을 가르쳐 포병을 양성했고요. 앞으로 이런 주제로 글을 써보려고 해요.
궁극적으로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나요?
이과와 문과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어요. 흔히들 이과, 문과는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일 수 없는 존재로 치부하잖아요. 세상을 각기 다른 시선으로 반 정도만 보면서요. 한 쪽에서 “아니, 기술 좀 빨리 개발하라니까 왜 못해?”라고 말하면, 다른 한 쪽에서는 “왜 그렇게 맨날 싸우는 거야? 원만하게 합의해서 법안 통과부터 시켜!”라며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 때도 있고요. 그런데 선진국들의 역사를 공부해 보니, 너무나 다른 이 두 그룹도 안 풀리는 어떤 문제에 봉착하면 결국 뭉쳐서 같이 해결하더라고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것만으로 이과 지식이 깊다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전 문제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을 지녔다고 생각해요. 서로가 못 보는 영역을 발견해 연결하는, 그래서 우리나라가 과학 선도국이 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역할을 수행하려면 지금 무엇이 필요할까요?
공상이요. 저 스스로를 ‘과학 선도국을 꿈꾸는 공상가’라고 소개하는데, 말도 안 되는 것을 상상하라는 카이스트 이광형 총장님 말씀이 자극이 될 때가 많아요. 생각조차 못했던 걸 실험하다 보면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아 보이던 문제도 아무 것도 아닌 게 될 수 있다는 거죠. 물론 지금까지 알려진 이론과 법칙에 기반을 둔 연구도 중요하지만 정말 공상에 가까운, 말도 안 되는 것을 상상하고 이야기 하며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 과학 선도국이 되는 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그런 영감이 되길 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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